해외입양인 기획연재"날 입양보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인터뷰] 해외 입양인 주디 엑컬리 박사


"한국요? 이번이 스무 번째 쯤 될 걸요?"

한국에 자주 방문하는 것 같다는 질문에 주디 엑컬리(Judith Eckerle)가 대답했다.

"대학 졸업 선물로 부모님이 보내주신 여행이 저의 첫 한국 방문이었어요. 그 여행은 제 인생의 '도전'이었습니다. 저는 평범하게 자랐거든요. 입양인이라는 것도 크게 신경 쓴 적 없습니다. 바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도 잘 못 느꼈죠. 사실 못 느꼈다기보다 그냥 몰랐다고 해야 맞을 것 같네요."

주디는 첫 한국 방문에서 많은 한국인들을 만나고, 또 입양 캠프에 참석해서 다른 입양인들도 만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한국에서, 한국인들 속에서 그는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자신이 한국인이라거나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 자랐기에 그 느낌은 특별했다. 그 특별한 느낌은 그를 계속 한국으로 이끌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더 경험하고 싶었고,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탐험하고 싶었다. 그는 첫 방문 후 2년 간 일곱 번 다녀갈 정도로 한국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소아과 의사로서 또 시설과 입양 아동 연구자로서 한국인들, 한국 정부와도 함께 일하게 되어 더욱 자주 한국을 찾았다. 


▲ 인터뷰하는 주디 엑컬리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한국에 방문한 주디 엑컬리를 만났다. 화려한 프로필이나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린아이 같은 앳된 미소와 장난기 어린 눈빛을 지니고 있는 그는, 알고보니 2003년에 미스 위스콘신으로 선발된 공인된 미모의 소유자였다.


주디 엑컬리(Judith Eckerle). 76년생. 한국 나이 43세. 의학박사. 국제 입양 프로그램 이사. 미나소타 대학교 소아과 부교수. 2010년 소아 결핵 비상 대책 본부에서 수여하는 미국 질병 센터(NCEZID) 상, 2013년 보육원 아동의 건강 개선을 위한 의료케어, 연구, 교육 등 여러 분야의 노력을 인정받아 미네소타 대학교 국제 입양 연구소에게 주어진 북미 입양 아동 연구 협회(NACAC) 상 수상.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그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10월 22일에 직접 만났다. 화려한 프로필이나 나이에 걸맞지 않게 그는 어린아이 같은 앳된 미소와 장난기 어린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2003년에 미스 위스콘신으로 선발된 적이 있는 공인된 미모의 소유자였다.


그는 생후 5개월에 미국 미네소타주로 입양되었다. 당시 주디의 부모에게는 이미 2남 1녀의 친생자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야말로 전형적인 미국가정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라면서 음악 레슨을 받았고, 여름에는 승마를 즐겼다. 또 아역 배우로도 활동했다. 평범하게 자랐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주디의 어린 시절은 충만했다. 바빠서 자신이 동양인이라거나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틈도 없었다는 말이 실감났다.


"제 삶에서 가족은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한 명 있는 여자 자매는 제 '베프'(best friend)입니다. 우리 가족은 정말 서로 친밀해요. 지금은 형제자매들이 각자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서 모두 모이면 19명이나 됩니다. 지난 봄 부모님의 결혼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 전부가 미네소타에서 만났어요."


▲ 주디 엑컬리의 가족 주디는 이미 2남 1녀의 친생자녀가 있는 부모에게로 입양되었다. 사진은 부모의 결혼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가족들.


정말 그의 성장기에 입양과 관련된 좋지 않은 경험은 한 번도 없었던 걸까?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긴 하죠. 5학년 때 한 남자애한테 펀치를 날렸던 적이 있어요. 그 애가 인종차별적인 말로 저를 불렀거든요. 어쨌든 좋은 대응은 아니었죠.(웃음) 나중에 고등학교에 가서는 그 애랑 결국 친구가 됐습니다. 사실 내가 다닌 학교에는 한국인들, 특히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건 전혀 큰 사건도 아니었어요. 6학년 때 세상에 둘도 없이 친한 친구를 사귀었는데,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그애가 입양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요. 전혀 물어보지도 않았고, 신경도 쓰지 않았거든요. 그만큼 입양인이라든가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인종 간 입양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는 그때의 사건은 별일이 아니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주디에 따르면 어차피 어릴 때는 서로 놀리면서 지낸다는 것이다. 어린애들은 뚱뚱하다거나 키가 크다거나 코가 높거나 등등 사소한 것들로 '얼레리 꼴레리'하며 지낸다. 주디는 자신의 경험이 그런 것들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든 해외든 입양에 찬성한다.

"우리는 아동들이 인간으로서의 권리, 가정에서 자랄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 주디 엑컬리(Judith Eckerle) 76년생 주디 엑컬리(Judith Eckerle)는 소아과 의사이자,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소아과 부교수로 특히 시설과 입양 아동에 대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주디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자신의 긍정적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소아과 의사로서 입양 아동이나 시설 아동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연구 결과는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어요. 아동의 성장, 뇌의 발달, 학습을 위해서는 의지할 만한 사람들과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 즉 사랑과 지속적 돌봄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런 것들은 시설이나 기관 같은 제도화된 양육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또 위탁가정 역시 영구적이지 못해요. 시설 출신 사람들은 굉장히 열악한 조건 속에서 성장합니다.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인지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많이 겪죠. 연구 과정을 통해 이런 사실을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결론적으로 시설에서 자란다면 사회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고요. 대안으로 위탁 가정을 얘기하는데, 위탁 가정에서 18세까지 자란다 해도, 안정적이지 못하며 그 뒤로 가족이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디에게 자신처럼 해외로 입양된 사람들 중에 (해외)입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음을 아는지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대부분의 해외 입양인들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솔직히 저는 거의 대다수 해외 입양인들이 입양된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미네소타주는 입양인, 특히 한국계 입양인이 많은데요. 그 친구들은 대부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교사, IT전문가가 특히 많고, 자기 생활에 만족하죠. 그런 사람들은 굳이 '입양되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한국에 오지 않죠. 제가 보기엔 오히려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는 이들이 소수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 역시 한국의 시설에 있었더라면 의료혜택이나, 교육, 안정된 취업, 결혼 등 모든 것이 정말 힘들거나 불가능했으리라는 사실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해외 입양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많은 학자, 종교인, 영향력 있는 사람들도 광범위하게 (해외) 입양에 반대한다. 주디는 그들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첫째로 저는 종교지도자들이 그러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이미 입양과 관련된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학자들은 입양인들의 아픔에 초점을 맞춘 것 같은데, 입양의 혜택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는 학자로서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하나의 케이스만 보아서는 안 되고 다양한 사례들을 연구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비유를 덧붙였다.

"만약 제가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차 사고로 죽어가는 어린 아이를 보았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을 절대 차에 태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 어떨까요? 그런 주장은 객관적인 태도라고 할 수 없지요."
 
주디가 특별히 시설과 입양 아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게 된 계기는 다나 이 존슨(Dana E JohnsonDana) 박사와의 만남이었다.

주디는 어릴 때부터 소아과 의사를 꿈꿨다. 그리고 16세 때 그가 살던 지역에서 소아과 의사 멘토와 랜덤으로 연결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때 다나 이 존슨박사를 만났다. 주디는 보육원 집중치료 과정을 함께 하며 그를 도왔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가 국외 입양아들을 돌봤던 입양 의학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디는 나중에 인턴 과정을 하면서, 존슨 박사를 다시 만났다.

존슨 박사의 지도 아래 인턴 생활을 하면서 주디는 곧 입양아동과 입양가정을 위해 평생 일하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 입양인이었기 때문에 입양인에게 필요한 것, 입양인이 가진 복잡성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도 존슨 박사와 함께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시설 아동, 시설 출신 입양인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시종일관 생기 넘치는 눈빛과 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던 주디는 대화 도중 딱 한번 눈시울을 붉혔다. 생부모를 찾았는지 물었을 때였다.

결혼 후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생모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하며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는 생부모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여러 번 텔레비전 쇼에 참여했고, SNS, 유전자 분석, 신문기사 등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는 동안 감정적으로 지쳤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겪어야 할 모든 것을 해냈다. 결국 친생가족에 대한 어떤 정보도 찾지 못했지만, 그 과정은 의미 있었다고 했다.

"저는 저와 닮은 혈연 가족을 만나고 싶었어요. 내 삶의 공백, 나의 그리운 역사의 한 부분을 채워 넣고 싶었죠. 내 가족들의 의학적 기록을 알고 싶고, 나의 생모가 어떻게 웃는지, 내게 친생 형제자매가 있는지 이런 질문들에 답을 얻고 싶었죠.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나는 행복하다고. 사랑받았다고, 그리고 성공했다고……. 그리고 나를 입양보내기로 결정한 것에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좋아서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었던 주디 엑컬리에게 시설 아동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 하나 하나가 과거의 '주디'일 수 있기에, 그들에 대한 연구는 결국 또 다른 자신들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리라. 주디는 말한다.

"저는 놀라운 열정과 목표를 가지고 있고, 저처럼 가정 없이 삶을 시작한 다른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돕고 싶습니다. 그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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