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입법관련[솔로몬의 엄마 최준영, 해외입양인에게 전하는 에세이] 외로움과 슬픔(Loneliness and Sorrow)

운영자
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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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女. 1955년생(65세). 서울 거주. 남편과 아들.

해외 입양인들을 위해, 시설에서의 비참했던 생활과 고아 출신이라는 편견으로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했던 자신의 삶에 대해 직접 글을 쓴 후, 사비를 들여 영문번역을 하고 프린트를 해서 말리홀트 여사에게 전달 한 고백 글입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나서서 번역까지 해야 했던 그 답답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잘 전달되도록 원문에 있는 문장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외로움과 슬픔>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인생길, 나의 슬픈 과거를 돌아보면 내 마음은 혼란스러워진다. 때로는 모든 기억을 지우고 싶다. 반면 나의 불행했던 경험을 글로 쓰고 싶어진다.


내가 자란, 부산에 있는 어느 시설에서 나는 많은 것을 보며 겪었다. 배 곯아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때는 이러한 일들을 어려서 잘 알지 못했으나 많은 시간이 지나서 어릴 적에 보고 겪은 일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에 내가 자랐던 시설 원장은 아이들을 잘 돌보지 않았다. 시청이나 구호단체들이 아이들을 위하여 지원금이나 식량을 주면 돈을 빼돌리고 식량은 밤에 몰래 팔아먹었다. 고아들이 배고파 죽어 나가도 신경 쓰지 않았고 빼돌린 지원금은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사용했다. 고용된 보육사의 급여도 일부를 주지 않아 그들의 생계를 어렵게 만들었다.


나는 거의 매일 목공 창고에서 황색 자루 속에 있는 아이들의 시신을 목격했다. 영양실조로 아이들이 하루에 몇 명씩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원장의 식구들은 맛있는 쌀밥에 고기반찬으로 호의호식했다. 아이들의 밥상에는 김치조차 없이 된장 간장에 보리밥과 보리죽만 올라왔다. 아이들은 움막에서 이런 밥을 먹었고, 부족한 배를 채우기 위해 야산에서 풀과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다. 어떤 날은 소마구 간에 있는 소밥을 몰래 훔쳐 먹기도 했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아침마다 적은 양의 보리죽을 먹고 학교에 가서 배가 고파 쓰러지기도 했다. 등하굣길에 아이들은 오로지 살기 위해 바다 근처로 가 해조류 등을 뜯어 먹기도 했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갔지만 나는 아직도 이러한 일들을 잊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원장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는다.


결혼 당시 나는 남편을 배우자로 깊이 신뢰하고 있었지만, 그로부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나는 늘 인격적으로 남편으로부터 무시당하고, 학대와 불신 그리고 폭행을 당했다. 직장에 다닐 때 나는 인자한 부모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처럼 꾸며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부러 행복한 사람처럼 즐겁게 웃으며 다녔다.



하지만 내 마음속은 늘 아픔이었다. 퇴근하는 길에는 슬픈 마음에 눈물만 흘렸다. 정말 죽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피곤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럴 때는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웠고, 보고 싶었다.


내 인생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만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 또한 나를 슬프게 한다. 내 외로움은 너무 깊고, 견디기 힘들다.


어느 날 나는 우연히 TV에서 ‘해외입양의 50년’이라는 특집 방송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 방송을 모두 보았다. 거기서 10년 전 TV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진 ‘수잔 브링크’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는 말 중에 자기를 보호해주었던 양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차라리 외국에 입양되지 않고 한국의 고아원에서 자랐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비탄에 잠겼다. 나는 수잔이 한국 고아원의 실정을 몰라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 사람이 그 실정을 알았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내가 겪은 고아원에서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의 말을 듣자니 매우 마음이 아팠다. 부모와 가족 없이 산다는 것이 한국에서는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슬프고 고민스러운지를 그녀는 모를 것이다. KBS방송국에서 해외 입양인들이 친생부모를 찾기 위한 신청을 하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만 한국 고아들이 신청하면 근거가 부족하다고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방송국에서도 고아에 대한 편견을 갖고 차별을 한다.


그녀가 어느 나라에서 자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나라에 살든 상관없이 가정에는 늘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그녀가 해외에 있는 가정에 입양된 것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의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입양되는 그 순간부터 고아의 운명은 바뀐다고 생각한다.


수잔은 입양되지 못한 한국 고아들이 해외로 입양 가는 아이들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는 부모없이 시설에서 자랐다고 하면 무시하고 짓밟고 사람을 믿지 않는다. 해외 입양인들은 가정에서 자라 평등한 기회를 사회에서 누릴 수 있지만, 한국에서 고아들은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일생을 거절과 편견 속에 산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시설 출신보다 해외 입양인들을 더 잘 받아주는 것 같다.


고아원이라는 폐쇄된 사회에서 격리되었다가 사회에 나온 한국의 시설 출신들은 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순탄치 않은 환경에서 자라 온 이들은 사회에 적응하는 문제 즉 취업은 물론이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시설에서 자란 나도 사회와 결혼 생활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어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믿었기에 그분이 주신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성경에 하나님은 고아들과 과부를 돌보신다는 말씀이 나의 슬픔과 역경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큰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


부모 없이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무리 바른 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아도 한국 사회에서는 신뢰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 내가 해외 입양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신들이 시설 출신인 우리보다 더없이 행복하고 다행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나는 시설에서의 아픔을 겪은 사람으로서 해외 입양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외로움과 슬픔을 가지고 무시당하고 소외된 삶보다 이왕이면 먼 나라에 입양이 되어 새 가정에서 양부모님 만나 사랑을 받아가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는 이것이 내 삶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2016. 11. 25.

솔로몬의 엄마 최준영



<Loneliness and Sorrow>


My journey of life deserted from parents after being borin in the world, when I look back upon my sad past, my mind becomes confused.


On the contrary, I feel life writing my unhappy experiences in writing. I saw and went through many things in a facility in Busan. I saw children dying of famine and malnutrition. At that time, I did not understand what these incidents were life, since I was young, but I have come to know what I saw and experiences in my childhood after years passed.

At that time, the director of the facility I grew up, did not take good care of children, when a city hall or rescue organizations gave foods for support, then stealthily sold them out at night, or embezzled support fund, so did not care about orphans dying of being hungry and sued the support for his family and extorted that. After employing nursing teachers, he did not pay for part of their salaries, so mad them have trouble making their own living.


Almost every day, I would witness children’s bodies placed in yellow sacks in a wood-working warehouse. Because of lack of nutrition, children were dying by several people every day. Children were made only to eat barely rice of soup with soybean paste, soy sauce even without gimchi. Most of the children ate such rice in a mud hut and had to eat grass and tree bark on a hill to fill their hunger and would cattle feeder in the cattle stable in secret.


Children going to school ate a paucity of barley rice every morning and fell in the school as they were hungry. On their way home, children looked up seaweeds near the sea to survive and went to school. Though may years have passed, I still do not forget those things and quell down my anger to the director.


At the time of my marriage, I deeply counted on my husband as a spouse, but have not received a deep love from him. When I went to work, I pretended to be a person who was grown with generous parents in a peaceful home. Otherwise, I was afraid I may be outcast from colleagues. I got along smiling in a joy like a happy person.


My mind was full of pain all the time. When I think of many things going back from work, I shed tears as I am sad in mind. I really wise to die. Why should I lead a hard and fatigued life like this? I am anxious to miss and see my mother. My mother, I am longing for seeing you! Were are you now?


I am so sad that I do not want to live this tired life anymore! It makes me feel sad also that I have to keep my life story deep in my mind without telling that to anyone. I am too lonely to endure. t makes me feel sad also that I have to keep my life story deep in my mind without telling that to anyone. I am too lonely to endure


One day, I happened to view a special feature, title “50 years of overses adoption” on TV. I saw that program all the way. And I saw the figure, Susan Brink, well known as she appeared on TV 10 years ago.


However, I was grief-stricken to hear her words that due to her resentment to her adoptive parents having protected her, it would have been better if she had been grown in a Korea orphanage without being adopted abroad. I thought Susan might have said such word as she does not know the actual situation of Korea orphanage. If she had known the actual condition


Thinking of what I had experienced, I was heartbroken to hear her remark. I wonder if she would know how hard, lonely, sad and painful thing they live in Korea without parents and family and moreover KBS broadcasting station says they struggle to find their families for adopted children if they apply for their family reunion, but it is difficult to do so, as Korean orphans lack their bases for their family. KBS broadcasting station has a prejudice and discriminate.


It is not known in what country she grew, I think it a God’s bliss only that she was adopted in a family abroad since any home will have a problem whether people live in any country. I think an adoptee’s fage changes from the moment it is adopted. Susan has not known how envious Korean orphans feel to the children going to adoption to an overseas family.


Susan has not known how envious Korean orphans feel to the children going to an overseas family.


Korea society ignores and tramples a person who was grown in a facility without parents and overseas adoptees may enjoy a better chance than a equal social treatment without any big discrimination, but Korean orphans live in a refusal and prejudice for life like the disabled people. In general, Korean people tend to accept overseas adoptees than those from facilities in Korea.


After entering into this society from being isolated at a closed society called an orphanage Korean people from facilities face a number of difficulties. They having been grown in an unsmooth path, have gong through many troubles from adoption to the society, employment and marriage. I, grown in a facility have tried many suicides as I had so hard for adapting myself to the marriage life.


Yet, I knew and believed in Jesus Christ, so I could live in this world with the faith given by Him. Bible says God cares about orphans and widows, which gives me a great comfort and consolation I can get over my sorrow and adversity on.


Children having grown in facilities without parents do not win recognition and trust in Korean society however rightly and hard they live. The word that I want to say to overseas adoptees is that they should know they are happier and more fortunate than us who are from facilities and live keeping that in mind, so I want to write this short letter to help overseas adoptees understand the pain of the children from facilities.


I would rather like to be adopted abroad, meet adoptive parents in a new home, received love and live happily than a ignored and isolate life in loneliness and sorrow... This is a method to look for happiness.


2016. 11. 25.

Choi Jun Young,

Solomon’s 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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