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terview] `딸쌍둥이` 입양해 5남매 부모로…전국입양가족연대 오창화·유금지 회장 부부

운영자
2019-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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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딸쌍둥이` 입양해 5남매 부모로…전국입양가족연대 오창화·유금지 회장 부부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69399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뉴스가 매일 나오는데 다른 쪽에서는 출산하자마자 버려지는 아기가 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유기아동은 이렇게 늘고 있지만 잘못된 제도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입양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이다.

요즘같이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세상에 5남매(2남3녀)를 키우는 부모가 있다면 `애국자` 소리를 들을 것이다.그런데 이 중 딸 둘이 입양아라면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2011년 쌍둥이 딸들을 가슴으로 낳아 키우고 있는 오창화·유금지 부부를 지난 11일 자택에서 만났다. 남편인 오창화 씨는 전국입양가족연대 회장이다. 오씨 부부가 아이들 얼굴까지 공개하면서 언론 인터뷰를 승낙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인터뷰를 통해 입양에 대한 일반인의 선입관이 달라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현실을 모른 채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관련법이 점점 입양을 어렵게 만들고, 이로 인해 낙태와 영아 유기가 늘어나고 있는 실태를 알리고 싶어했다. 부모 없이 커야 하는 상황에 처한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두 사람을 만나 가슴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어떻게 쌍둥이를 입양하게 됐나.

▷오창화 회장=첫째 둘째를 연년생으로 결혼하자마자 잘 낳았다. 원래부터 자녀계획이 많아서 여덟 살 터울의 셋째 딸을 낳았고 또 넷째까지 낳게 되었는데 조기태반박리로 출산을 일주일 앞두고 산모와 아이 모두 위독해져 급하게 아이가 나오게 됐다. 하지만 30분 동안 산소 공급이 안 돼 온유(넷째 아이 태명)는 24시간만 살고 천국에 보내게 됐다. 아내가 무의식 상태에서 깨어나 먼저 아기를 찾았다. 아내와 함께 병원 통로를 걸어서 아이를 보러 갔다. 이미 숨을 멈춘 아기를 호스를 빼줘서 안았는데 사람의 몸이 옷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는 기독교인인데 처음으로 꼭 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와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더 낳을 수 없게 돼서 입양하기로 결심한 건가.

▷오 회장=셋째가 한참 안 생길 때 잠시 입양을 생각했던 적이 있다. 넷째가 천국에 가니 아내가 서른아홉이라 의사선생님이 더 이상은 출산이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입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다.

▷유금지 씨=이미 아들 둘, 딸 하나가 있는데 왜 입양을 하느냐고 아버님(시아버지)의 반대가 극심했다. "호적에서 파겠다"고까지 했다. 저희 부모 세대는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는데 유산 문제로 자녀들이 다투지 않을까 걱정도 하셨었다.

―어떻게 부친을 설득했나.

▷오 회장=매주 주일 저녁에 동생 가족까지 모여서 온 가족이 같이 밥을 먹는데 그때마다 기도 제목을 `하느님 저희가 입양을 해야 할 텐데요`로 시작했다. 그렇게 1년 반을 설득했다.

―그래서 허락을 받아낸 건가.

▷오 회장=그날도 입양에 대한 얘기를 꺼냈더니 아버지가 "멋대로 해라 ××야"라고 화를 내며 가버리셨다. 그러고 나서 바로 아내에게 전화해서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유씨=남편이 전화를 해서 진행해도 된다고 얘기를 했는데 내용을 들어보니 전혀 허락을 받은 게 아니었다. 그래도 이미 입양을 마음속으로 결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입양을 진행했다.

―딸 쌍둥이는 정말 드문 케이스라고 하던데.

▷유씨=딸을 입양하고 싶어서 딸 둘이어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담당자가 딸 쌍둥이는 5~6년에 나올까 말까 하기 때문에 힘들 거라고 했다. 그런데 정식으로 아버지께 허락을 받았을 무렵 연락이 왔는데 담당자가 "진짜 딸 쌍둥이가 왔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기뻤나.

▷유씨=전화를 받으니 너무 무서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짜 쌍둥이라고 하니 셋도 버거운데 다섯을 어떻게 키울 것이며, 아이들을 홈스쿨링으로 키우는데 다섯 명이 가능할 것인지 두려웠다. 아이 하나 입양하는 것도 허락받기 힘들었는데 둘이면 아버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걱정이 됐다. 일단 남편과 의논해서 말씀 드리겠다고 했다.

―결국에는 어떻게 결정을 했나.

▷유씨=전화를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때 홈스쿨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어떤 여성 선교사에 대한 책을 읽어주게 됐다. 예전에 아프리카에서는 쌍둥이가 저주의 상징이어서 태어나면 바로 죽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선교사가 밤에 몰래 마을에 들어가서 쌍둥이를 훔쳐서 나오는 이야기가 책에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그런 책을 읽어서인지 계속 울컥했다. 당시 큰 아이들이 13세, 12세, 4세였는데 아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 아이들을 키우면 하느님이 기뻐하실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다. 아이들이 하는 그냥 착한 말이었지만 그때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열흘 만에 쌍둥이들을 데리러 갔다. 그때가 2011년 8월 27일이었다. 아이들이 6월 27일생이었으니까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이들이었다.

―아버지께서 화내시지 않던가.

▷유씨=모든 입양 가족마다 우여곡절이 많은데 저희는 아버님을 설득하고 입양한 게 엄청난 관문을 통과한 것이었다. 쌍둥이를 데려오고 토요일에 시댁부터 갔다. 아예 아버지가 집에 안 들어오셨다. 그다음 주에 갔더니 이번에는 TV만 보지 아기를 전혀 쳐다보지 않으셨다.

―언제 아버님께서 허락을 했나.

▷유씨=3주 지나니까 어머님(시어머니)께서 전화해서 아버지께서 밤잠을 못 주무시고 쌍둥이가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해주셨다. 그다음 주에 집에 가니 그때부터 손에서 아기를 내려놓지 않으셨다. 나중에는 친구분들에게 "자식 중 난임 가정이 있으면 입양하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홈스쿨링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유씨=입시 위주의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우기가 싫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명동 화교학교에 보냈다. 서울 한가운데 있는 시골학교 같다고 해서였다. 그런데 가보니 아이를 국제적으로 키우고 싶은 한국 엄마들이 이미 아이들을 많이 넣었더라. 대안학교도 생각해 보았는데 전부 서울 외곽이어서 등·하교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초등학교 1·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그때부터 홈스쿨링을 하게 됐다.

―다섯 아이를 홈스쿨링으로 키운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유씨=처음에는 남편도 강력하게 반대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살아남으려면 학교를 나와야 한다고. 그래도 저는 인생을 (사교육으로) 허비할 수 없다고 생각해 결국 남편을 설득했다. 홈스쿨링을 하면 사회성 걱정을 하는데 건강한 사회성은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현재 입양은 전부 공개입양인가.

▷오 회장=아직 많은 분들이 입양은 애를 낳을 수 없는 부부가 아이를 감쪽같이 데려와서 자기 친생자식처럼 키우는 걸 생각하는데 그런 단계는 이미 지났다. 우리나라에 공개입양운동을 한 지 20년이 지났고 아이들에게 입양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공개한다. 선진국도 그렇게 하고 있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좋은 성공 사례가 되고 있다.

―현재 입양특례법이 입양을 어렵게 한다고 들었다.

▷오 회장=1999년부터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던 스티븐 모리슨이라는 분이 한국입양홍보회라는 것을 만들어 공개운동입양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해에 1000명 넘게 국내 입양이 이뤄질 정도로 인식이 달라졌다. 그런데 2012년 입양특례법이 생기면서 그 숫자가 크게 꺾였다(2017년 기준 국내 입양 465명). 연예인 중 입양 가족으로 유명한 차인표·신애라 씨도 입양특례법 이전에 하셨고 저희도 특례법 전에 입양을 했다.

―현재 입양특례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오 회장=가장 안타까운 것이 출생등록제다. 미국에서는 노네임·노블레임·노셰임이라는 원칙이 있다. 아이를 버린 엄마의 이름을 묻지 않고, 비난하지도 않으며,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안전하게 보호받는 것이 미국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가 완벽할 수 없고 엄마가 나서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있는데, 우리나라 현재 입양제도는 무조건 엄마 호적에 올려야 입양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신분이 노출되기를 꺼리는 엄마는 낙태를 하거나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넣게 되는데 결국 불법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낙태 통계가 없어서 알 수 없지만 입양이 줄어든 만큼 낙태가 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새로 발의된 입양특례법 개정안도 문제가 크다는 것이 입양가족연대 입장인가.

▷오 회장=개정안은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엄마의 휴대폰 번호와 DNA를 등록해야 한다. 입양아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입양을 보내려는 엄마라면 혼외출산이거나 미성년자·근친상간·강간 같은 어려운 사정이 있다. 그런데 자기 정보를 등록하라고 하면 입양 자체를 기피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친생부모의 인권 역시 중요하다. 이미 현행법으로도 생부모를 찾아 입양정보 공개를 위한 동의 절차를 진행하면서 생부모에게 우편물을 보내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밀이 드러나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

―개정안은 민간기관 중심이던 입양을 정부가 직영화하는 것인가.

▷오 회장=개정안은 동방사회복지회,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등 3대 입양기관의 역할을 줄이고 복지부(중앙입양원)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입양원의 인력, 조직, 예산을 확충해 입양 자체를 직영화하겠다는 것. 엄격한 자격심사와 복잡해진 절차로 인해 오히려 입양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생명과 인권을 다루는 일이 `봉사`가 아닌 공무로 다뤄지면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3개 입양기관에서 자신들의 역할 축소를 우려하는 것 아닌가.

▷오 회장=3대 입양기관이 정부 지원을 받는 데다 국제 입양을 하면 해외에서 건당 2000만원 정도를 받기 때문에 정부 직영화를 반대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해외 입양을 가려면 20개월 이상 아이를 위탁모에게 맡겨야 하기 때문에 훨씬 많은 돈이 든다. 그래서 정부와 해외에서 지원받는 돈으로는 부족해 후원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행 입양특례법과 개정안이 현실과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오 회장=2012년 입법과 지금 개정안을 주도하는 분들은 어떻게든 친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다. 미혼모라도 말이다. 그래서 입양을 최대한 어렵게 해 어떻게든 직접 키우도록 한다. 현실을 잘 모르는 법안이다. 결국 법안 때문에 버려지는 아이가 늘어나고 시설에 가는 아이가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입양특례법 이후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이가 급증한 데서 알 수 있다.

―현행 입양특례법이 해외 입양도 막고 있다는 주장은 뭔가.

▷오 회장=국내 입양을 5개월 추진한 후 국외 입양을 추진하도록 돼 있지만 현실을 보면 입양 대상 아동 모두가 국내 입양이 될 수 없다. 입양할 때 여아를 선호하는 사례가 많다 보니 건강한 여아가 아니면 입양이 어렵다. 건강한 남자아이도 입양이 어려운데 아주 작은 장애가 있다면 국내 입양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아동을 입양해서 키운다는 것은 모든 가족이 돌봐야 한다는 부담과 가난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아들이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면 비교할 수 없는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정보 공개를 반대하는 것이 입양아가 생모를 찾도록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건 아닌가.

▷오 회장=입양을 해보지 않고 고민하는 사람은 생모가 나타나 내 아이를 뺏어가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쌍둥이가 자기 생모를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낳아준 엄마도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쌍둥이를 키우면서 누린 기쁨은 우리만의 유니크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입양아가 생모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만난 이후에는 생모와의 관계를 이어가지 못한다. 근본을 알고 아픔도 알고 이해도 했지만 가족은 나를 키워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입양 부모는 자녀가 생모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편견이다.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같이 살면서 삶을 나눈 관계라고 생각한다.

▷유씨=잘 성장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생모를 찾아서 그분을 잘 사랑할 수 있고 그분이 또 딸들을 사랑할 때 받아낼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다만 법이 아이들이 건강한 사람이 되는 과정에 충격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 회장=해외 입양 사례를 보면 친모와 상봉하고 부모와 연락을 유지하는 것은 전체 입양아 중 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낳아준 부모가 있더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쌓은 정이 크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너는 입양됐다`고 알려주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유씨=아이가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는 시기를 입양 가족 사이에서는 애도기라고 한다. 이걸 다룬 다큐멘터리까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입양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라지만 여자아이는 여섯 살, 남자아이는 일곱 살 정도는 되어야 그게 `다른 엄마`가 있다는 뜻인 것을 인식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아이들 책 중에 출산의 과정을 그리는 동화책이 많은데 어느 날 셋째가 책을 가져와서 "엄마 나 낳을 때 이렇게 아팠어"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너무 아팠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한참 지나고 언니가 어딘가에 가니까 막내가 그 책을 조용히 들고 와서 언니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나 낳을 때 아팠죠" 이렇게 물어봤다. 그만큼 아이에게 힘든 고통이었기 때문에 언니가 없을 때 물어봤던 거다. 

―어떻게 얘기해줬나.

▷유씨=나도 처음에는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잘 먹고 있었는데 막상 그런 순간이 오니 너무 당황했던 것 같다. 아이에게 얘기해줄 때 슬픈 이야기로 전달돼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도 입양을 슬픈 것으로 생각하게 되니까. 나는 "엄마는 널 아프면서 낳고 싶었는데 그런 축복이 주어지지 않았어. 아프게 낳아준 엄마는 따로 있고, 엄마는 그 예쁜 애기를 받기만 했다" 이렇게 얘기했다.

―막내딸 반응은 어땠나.

▷유씨=애가 이해할까 고민했는데 잠깐만 듣고 "네" 하고 가버렸다. 아이들은 완전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반응을 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여전히 널 사랑해"라는 말, 변함없다는 마음의 메시지를 듣고 싶어서 질문하는 것이지,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 아빠 마음의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지금도 아이들이 애도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도 입양이라는 개념을 배워가고 있다.

―입양특례법이 행정 절차 때문에 가장 중요한 초기 입양 시기를 놓친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오 회장=신생아 시기가 지난 입양아를 `연장아`라고 하는데 이런 아이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폭식을 하고 자기 것을 미리 챙겨놓으려고 한다. 공동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갓난아이 때부터 부모님이 아이콘택트를 하면서 키워야 정서적으로 안정된다고 생각한다. 시설에서는 자원봉사자 한 명이 20명 아기의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고 해야 한다. 이런 시기는 길면 길수록 좋지 않다. 절차가 복잡하고 오래 걸리다 보니 아이들이 새로운 부모에게 적응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입양이 쉬워지면 아이를 쉽게 버리는 부모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닐까.

▷오 회장=입양을 쉽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낳아준 엄마·아빠와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법이 까다로워지면서 시설로 가는 아이가 늘고 있다. 어느 쪽이 진짜로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특례법 이후에 연봉 5000만원 이상이 되어야 입양 조건에 부합된다고 한다.

▷오 회장=특례법에 입양 부모가 연봉 5000만원 이상의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 기준이 생기면서 신청자가 줄어들었다. 우리나라 평균 가정 연소득도 안 되는 사람에게 어떻게 아이를 키우게 하느냐는 취지일 거다. 하지만 아이가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가정에서 자라는 게 시설에서 자라는 것보다 좋다는 입장이다. 시설에 지원할 돈을 차라리 입양하겠다는 부모에게 주고 키우도록 하는 게 아이들에게는 더 좋다.

▷유씨=입양 부모들이 아무런 지원이 없어도 입양할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녀를 키울 때 돈 없이 키울 수는 없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돈을 이유로 입양을 못하게 한다면 이 사회가 돈을 최고의 가치로 둔다는 뜻 아닌가.

―입양은 고아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오 회장=고아권익연대라는 고아들의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고아원을 나온 아이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당연히 고아원에서 자란 아동들이 가정에서 자란 아동보다 불행해지는 비율이 높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복지는 가정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입양은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한다는 의미도 있을까.

▷오 회장=우리는 자식을 직접 낳기도 했고 가슴으로도 낳았다. 필요에 의해 입양을 했고 아이들로 인해 행복을 느꼈기 때문에 특권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이를 구했다거나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혹시 아이들이 시설에서 자랐을 때 어떤 경험을 했을지를 생각해본다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시설에 계신 분들이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돌보지만 그건 수많은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나뉠 수밖에 없다. 유아기와 유소년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일방적인 사랑이다.

―앞으로 어떤 운동을 할 계획인가.

▷오 회장=현재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막고 장기적으로는 입양특례법을 아이들 인권에 맞는 현실적인 법으로 바꾸는 운동을 하려고 한다. 또 고아권익연대와 함께 고아들의 현 상황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같이하려고 한다.

▷유씨=입양이라는 눈을 통해 세상을 보니 여러 가지 문제를 보게 됐다. 입양을 하고 싶지만 머뭇거리면서 못 건너오시는 분들이 너무 많다. 우리가 돌다리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또 돌다리를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법이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사회구성인으로 살아가는 한국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 오창화·유금지 전국입양가족연대 회장 부부는…

오창화·유금지 부부는 1970년 동갑으로 1998년 결혼했다. 스물한 살과 스무 살, 한 살터울 아들 둘과 열두 살 딸아이, 아홉 살 쌍둥이 여자아이 총 다섯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오창화 씨는 아버지 고(故) 오영훈 진원무역 회장의 뒤를 이어 동생과 함께 과일 수입·유통업을 하고 있다.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 기업 중 최초로 바나나 농장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유금지 씨는 10년 넘게 다섯 아이의 엄마이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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